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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글, 시

햇빛과 바람,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방법_장시준

by Old Wooden Table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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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반가운 지인을 만나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나이 많으신 지인분께서 최근에 경험하신 일이라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방법에 대해서 이전에 생각해 본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경험을 옮기려 한다. 되도록이면 나의 생각을 넣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들 딸들이 모두 성장하여 떠나고 홀로 있는 집에서 눈을 뜬 어느 아침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가벼운 몸으로 새벽에 잠을 깼다. 내가 잠에서 깼다는 의식이 들고 눈을 뜨려고 했을 때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몸을 떨게 되었다.

 

아주 짧은 순간 눈물이 흐르는 두 눈에 그리운 어머니가 보이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너무도 그립고 또 보고 싶어졌다. 말 못 하는 갓난아이의 배고픔을 표현하는 듯한 흐느낌 소리에 그리운 어머니가 섞여 있었다. 한참을 진정하지 못하고 누운 채로 그리운 어머니를 외치고 또 외쳤다. 그날 아침 미세하게 전달되는 이중 창문의 작은 떨림이 나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울고 또 울었다. 나에게 전달되던 미세한 창문의 진동은 점차 커져 어느새 누군가 밖에서 두드리는 노크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켜 창문으로 다가갔다.

 

첫 번째 창문을 열기 위해 커튼을 걷었을 때 한겨울이었지만 안과밖을 구분하는 유리를 통해 들어온 포근한 햇살을 얼굴로  느낄 수 있었다. 따뜻했다.

 

두 번째 창문을 열었을 때 눈물로 젖어 있던 두 뺨에 바람이 세차게 부딪고 햇빛이 전해주는 따뜻한 기운과 함께 내 볼에 밀어 쳤던 바람은 순식간에 내 눈물을 마른 손수건으로 닦아 내듯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 순간 바람과 햇살을 통해 나는 그리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50년 전 내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해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쁜 삶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기억하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그 순간 떠올랐다.

 

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데리고 종종 마을 뒷산에 있는 산소에 오르곤 했다. 그 산소에는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묻혀있는 곳이었다.  할아버지와 산소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께서는 나무 그늘이 아닌 햇빛이 강하게 드는 산소 중간에 오랫동안 앉아계시곤 했고, 한참을 앉아 계실 때면 "아이고 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불면 좋겠네!"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김없이 산소를 둘러싸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바람소리를 만들어 줬다. 바람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할아버지께서는 그 소리를 한참 듣고 있다가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아이고 인제 갈렵니다. 잘 있으세요"라고 말씀하시며 산소를 내려왔다. 

 

산소에 오를 때마다 과자를 얻어먹는 나로서는 손해 볼일이 없었지만 가끔 귀찮을 때면 "산소에 왜 가는데요?"라고 물어보곤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리운 사람이 있으니까!"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내가 "아무도 없잖아요?"라고 물으면 "너도 할아버지처럼 나이 먹으면 보인다."라고 말씀하셨다. 알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과자를 얻어먹는 기회를 날려 버릴 수 없어 늘 할아버지와 동행했었다. 내가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께서 또다시 산소에 가자고 하셨다. 이제 더 이상 과자가 성에 차지 않았던 나는 "산소에 왜 가는데요?"라고 크게 물었고, 그날 할아버지의 답변은 여느 날 답변과는 달랐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힌다. 죽은 사람일지라도 그 몸에는 기운이라는 것이 남아 있게 되는 법인데, 죽은 몸이 삭으면 그 기운이 땅 아래로 갈 때도 있고, 땅 위로 갈 때도 있다. 때로는 묻혀 있던 땅에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는데, 남아 있던 기운은 나무뿌리나 풀뿌리를 타고 땅 위로 올라간다. 그러면 나무나 풀이 햇빛을 받아 숨을 쉴 때 그 기운이 바람을 타고 세상으로 퍼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땅 위로 스믈 스믈 올라오는 기운도 있는데, 이 기운은 아지랑이에 실리거나 바람이 불 때 세상에 퍼지게 된다. 땅속으로 꺼지는 기운도 있는데, 이 기운도 결국에 땅  밑으로 흐르는 물을 만나 다시 땅 위로 올라오게 되고, 강이고 호수고 바다로 흘러들면 결국 햇빛 받고 바람을 타고 해서 세상으로 퍼지게 된다. 결국 죽어서 땅에 묻히지만 그 기운은 햇빛 받는 데로 바람 부는 데로 골고루 퍼지게 된다. 이 말은 죽어서 땅에 묻힌 사람은 몸은 죽었지만, 그 기운은 햇빛에 그리고 바람 속에 있다는 것이고, 죽어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날씨 좋은 날 바람 타고 오라고 소원하면 만날 수 있다. 할아버지도 인자는 아버지 하고 어머니도 보고 싶고, 니처럼 내 손잡고 산소에 같이 가던 할아버지도 많이 보고 싶다."

 

그 시절 할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어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지만, 햇빛과 바람을 타고온 그리운 어머니를 만남으로써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늘 그리움 사람이 보고 싶어지면 창문을 열고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어주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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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인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장시준 작가님의 글이다. 이 글은 정식으로 출판된 적은 없지만 작가님의 허락을 받아 A4 용지에 인쇄되어 있던 글을 그대로 옮겨왔다. 그리운 사람은 햇빛과 바람을 타고 온다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닿았고 나도 내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닫혀있던 창문을 열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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