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는 반복되는 거대한 무대이다. 생명이 있는 사람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사람도 어느 순간 생성되고 어느 순간 소멸한다. 인간의 생성과 소멸 또한 우주가 생성하고 소멸하는 모습과 같다. 차이점은 인간의 생성은 탄생이라 하고 소멸을 죽음으로 표현할 뿐 우주의 생성과 소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생명의 생성이라는 것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것과 같이 생명의 씨앗을 품은 작은 세포가 만들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생성을 위한 생명 씨앗의 형상은 온전치 못하나 이것은 확실이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또한, 소멸이라는 것은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생성과 소멸이 반복된다는 것은 단순히 동일한 생성과 소멸이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한 후에 다시 그 사람이 새로운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 즉, 탄생과 소멸의 한 주기 후에는 다른 생성과 다른 소멸로 이어짐을 의미한다. 생성과 소멸의 반복이 다른 생성과 소멸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나는 하나의 생명 소멸이 어떻게 새로운 생성과 연결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생명의 탄생을 위해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함으로써 보일 수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유한함으로 인해 종국에 사망에 이른다. 사망한 사람은 관속에 묻히게 되고 부패되어 그 사람이 지니고 있던 형체는 사라지고 부패된 몸의 일부는 양분의 형태로 흙으로 또는 물로 흡수된다. 흙과 물에 흡수된 인간의 양분은 풀로 혹은 나무로 또는 곤충의 양분으로 흡수된다. 이렇게 흡수된 인간의 양분은 그들의 생명 활동을 위한 에너지로 쓰이며 결과적으로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열매로 곤충의 번식으로 혹은 무언가의 씨앗을 만들게 된다. 이런 결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생명 탄생의 연결고리가 된다. 더 나아가 이 결과들을 섭취한 동물들이 있다면 인간이 사망하면서 남긴 양분이 동물로 전달되고 이들의 이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로 혹은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자양분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한 사람의 소멸 즉, 사망은 새로운 탄생의 씨앗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성과 소멸 그리고 새로운 생성과 새로운 소멸의 무한 반복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때 화장한 사람들의 경우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있다. 화장한 사람들은 유골함에 보관되게 되는데 그러면 그들의 양분은 소멸로 끝이 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탄생과 소멸 그리고 새로운 탄생의 연결고리가 끊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골은 화장의 결과물로 남는 것이지 사망한 사람의 대부분은 새 생명 탄생을 연결고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화장 후 남은 유골은 사람의 가장 일부일 뿐이며 사망한 사람의 몸이 가진 탄생을 위한 에너지는 화장 중에 대기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증기의 형태이며 수증기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을 의미한다. 사망 후에 대해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천국으로 승천하는 것과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 또한 새로운 탄생을 의미할 것이다. 천국으로의 승천은 천국과 같은 형상을 지닌 세상에서 기쁨을 안겨 주는 새로운 탄생의 연결을 의미하고, 윤회설 또한 새로운 모습으로의 탄생을 위한 반복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주는 유한하다. 그 시작이 있다면 반드시 그 끝이 있다. 거대한 우주의 생성과 소멸의 시간 속에서 우주 속의 작은 파편들은 자신들만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 주기가 각기 달라 별은 별이 가지고 있는 생성과 소멸의 주기를 따르고, 인간은 인간의 생명과 소멸의 주기를 따르며, 또 다른 생명체들은 그들만의 생성과 소멸의 주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각 객채들의 생성과 소멸 주기는 서로 독립적이지만 모든 객체들의 생성과 소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지구의 생성과 소멸의 주기 속에 있으며 지구는 태양계의 생성과 소멸의 주기 속에 있고 태양계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의 주기에 속해 있다. 이러한 우주의 주기로 본다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 즉, 소멸한다는 것이 새로운 탄생을 위한 작은 주기라 생각할 수 있고 이것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들이 죽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기보다는 죽는 과정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간은 고통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느끼는 고통을 가장 큰 불행으로 느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죽음의 순간에 느낀 고통에 의한 불행은 다시는 복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장 큰 공포가 될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내일 태양이 다시 뜨는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의 불행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은 또 다른 태양을 기대할 수 없게 한다. 자살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불행을 끊어 내기 위해 자살을 택하게 되지만 자살의 순간 가장 큰 불행과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우주 속에서 무한 반복되는 탄생과 소멸은 행복과 불행의 양 끝단에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탄생과 소멸 모두 행복으로 이어지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탄생의 기쁨은 자신이 느낄 수 없고 소멸의 고통은 오로지 자신만이 겪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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